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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ART

조선의 풍속화가 / 김홍도, 신윤복... 그리고 김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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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씨름도, 무동, 서당, 대장간, 단오풍정, 월하정인, 청금상련 등 조선의 풍속화라 하면 현대 사람들은 주로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뒤로는 이름을 알리지 않은 미상의 풍속화가들이 많다는 것. 나는 그 중,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풍속화가 '김준근'에 대해 자세히 알려보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김준근, 그는 누구인가

 

 

출처: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호는 '기산'. 평민으로 살았던 김준근 그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19세기 말 개항기의 부산과 원산 등지에서 활동하며 조선의 풍속화를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국내 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주로 판매가 되었으며, 이는 조선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를 가히 조선을 세계에 알린 풍속화가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풍속화는 한국(250)을 포함해 현재 독일(100), 프랑스(166), 영국(99), 덴마크(94), 네덜란드(22), 오스트리아(119), 러시아(42), 미국(98), 캐나다, 일본 등 전 세계 20여개 국의 박물관에 자그마치 약 15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김준근의 작품은 당시 서양인들의 여행기 삽화로도 활용될 정도로 조선의 일상을 해외에 널리 알리게 되었는데, 이는 조선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외국인들에게 조선을 이해시키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삽화가로서도 활동한 김준근 - 우리나라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 '천로역정'의 삽화 제작에도 참여하였음)

 

 

출처: 신랑이 장가가는 모습 /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그의 풍속화에서는 농사, 잠직, 혼례, 선비와 기생 놀이 같은 전통적 주제뿐만 아니라 형벌, 제례, 장례 같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려내지 않은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이러한 주제는 조선인의 일상보다는 민속학적 흥미를 가진 서양인 구매자들에게 맞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에 와서 김준근의 이러한 작품들은 과거 서민들의 생활 양식과 풍습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또한 김준근의 풍속화는 19~ 19세기 중국의 수출화와 유사한 성격을 띄는데, 대량 제작 된 것과 외국인들이 민족지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에 활용하는 것에 있어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출처: 조선과 신성한 백두산, 캐번디쉬

 

혼례 장면: 조선시대의 전통 혼례 절차를 세밀하게 그린 그림들로 신랑과 신부의 만남부터 혼례식을 치르는 장면까지 다양한 순간들이 포함되어있다. 이 그림들은 당시 혼례가 중요한 사회적 의례였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혼례를 위한 준비나 의복과 장식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혼례와 관련된 작품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문화적 전통을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새참 먹는 모습 /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농사 풍경: 농사를 주제로 한 풍속화로, 조선 후기의 농업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그림에서는 농민들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 쟁기를 끄는 모습, 수확을 준비하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는데, 특히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당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브런치스토리

 

출처: ARTLECTURE
출처:ARTLECTURE
출처: 오마이뉴스

 

형벌 장면: 김준근의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는 형벌을 받는 사람을 그린 그림들 또한 유명하다. 형벌을 집행하는 과정과 집행받는 사람이 고통을 겪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 되었는데, 이는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으며 형벌을 받는 모습을 사회적 질서 유지의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김준근은 형벌을 집행하는 관리들과 피해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법과 질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 갔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한 일상 풍경을 넘어 당시의 법적 구조와 사회적 규범을 표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출처: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출처: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박물관

 

 

 

기생과 선비의 만남 장면: 기생과 선비가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면을 그린 작품들로,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기생들이 문화적 교류의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선비들과 기생들 간의 만남은 흔히 발생하던 일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김준근은 기생과 선비의 복잡한 관계들을 그려가며, 이들이 함계 즐기는 음주, 노래, 춤 등의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조선의 사교 문화를 잘 드러내고 있고, 특히 기생이 단순히 음란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출처: 시장의 모습 /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개항기 속 평민 풍속화가 김준근에 대한 평가

 

 

김준근은 조선 개항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조선의 문화를 세계에 알린 선구적 화가임이 틀림없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풍속화를 넘어,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특히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확실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는 그가 조선시대 풍속화가이자 문화 외교관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더욱이 그의 활동 시기,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일제강점기 이전의 조선을 기록한 작품으로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전 세계 주요 박물관에 소장되어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적 유산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위인을 우리는 기억하고 존경해야 할 이유가 있다. 풍속화가 김준근, 그에 대해서도 이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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